1월 27 2005
설날은 E-mail로부터 먼저 온다
요즘 아침 E-mail Notifier로 부터 리스팅되는 스팸성(내가 정보를 요청했으므로 스팸은 아닌데) 메일의 대부분은 설날 선물용품에 대한 정보성 광고 메일이다. 우리네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어지러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요즘같은 불경기에 설날은 까마득하고 단지 며칠동안 쉴 수 있다는 아니 회사를 안간다는 의미밖에 없는데 대형업체들은 설날은 여전히 물건을 많이 팔 수 있는 좋은 기회인가보다.
시골에선 설날이 되면 엄마가 제일 먼저 바빠진다. 우선 튀밥, 강정, 가래떡, 송편 등 온갖 설날 손님맞이용 음식을 만들고 손수 밤을 새워 짠 왕골 돗자리를 시장에 들고 나가셨다. 이걸 좋은 값에 팔아야 설날에 쓰일 제수를 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삼형제 ‘설치리’를 사고 조카들과 친척 아이들의 세배돈을 준비할 수 있었다.
예전엔 설날이 오는 것을 제일 먼저 알리는 것은 동네마다 찾아다니는 박상(튀밥)장수의 펑하고 터지는 튀밥 튀기는 소리일 것이다. 펑펑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새하얗게 피는 김속을 뛰어다니며 그것을 조금 얻어 먹으려는 아이들과 깡밥(강정)을 만들려고 내어 놓은 쌀, 보리, 콩, 강냉이와 작년에 말려 놓은 가래떡 썰어 놓은 것 등 곡물로 튀겨 부풀릴 수 있는 모든 것이 울긋불긋한 보자기 덮힌 바구니에 담겨 줄을 서 있고 거기에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만이 신이 났다.
우리집은 겨울 농한기가 되면 왕골 돗자리를 밤을 새워 짜서 5일장에 내다 팔았다. 이놈의 왕골은 머리위와 줄기, 잎이 톱니모양으로 날카로와 보드라운 살결이 스쳐만가도 베어 피를 보기 일수였다. 그래서 시원할 때 긴팔 옷을 입고 이슬이 걷히기 전에 얼른 빼어 왕골머리를 잘라 한단 한단 묶어 개울가에 씻어 말려놓고 새벽에 풀먹이러 보내 놓은 소를 찾으러 산으로 갔다.
씻어 말린 왕골은 좋은 놈은 어른 키보다 훨씬 커서 어른들은 한명이 왕골 껍질을 6면 정도로 벗겨내고 아이들은 팔이 짧아 두명이서 조를 짜서 서툰 솜씨로 만들었지만 손이 모자라 이것도 도움이 되었다. 서둘러 먹은 아침에 한참을 지났어도 아직 해는 아직도 중천인데 저쪽 서쪽 하늘에 소나기 먹구름이라도 끼일라치면 얼른 해뜰 때 잔디 위에 널어 놓은 왕골 껍질을 걷어러 서둘러 서둘러 뒷동산에 숨이 차게 뛰어 올라갔다. 이놈이 비를 맞으면 표면에 울긋불긋 얼룩반점이 생겨 똑같은 노력에도 반값도 못받았다.
서쪽 하늘에 노을이 물들 때쯤 한아이는 또 점심에 풀어 소를 찾아 뉘엿 뉘엿 지는 해를 보며 내려오고 한아이는 여름 좋은 볕에 말린 왕골을 걷어 내어 수줍은 처녀의 긴머리 빗듯이 가지런히 참빗으로 빗어 거풀을 벗겨내고 모아서 한단 한단을 곧추 세워 놓고 이놈을 여럿이 묶어서 어린 아이가 할아버지 상투 뽑듯이 키 큰순으로 위에서 뽑아 올려 등급을 분류해서 서늘한 곳에 잘 말려 보관해 놓았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이 되면 소죽을 끓이려고 사랑방에 군불을 넣어 놓고 그 속에다 고구마나 밤을 넣어 밤이 탁탁하고 터지는 소리에 잘 익혀 구워내어 한겨울 저녁 간식거리를 만들어 놓고 뜨뜻한 아랫목에 부모님은 부러지지 않게 찬물에 불려 놓은 왕골을 장단에 맞춰 아버지는 한개 한개 돗자리틀에 메어 놓은 씨줄날줄 사이에 찔러 넣고 엄마는 쿵덕쿵덕 이쪽 저쪽으로 틀을 뒤집어 찍으며 그 겨울 밤을 지샜다.
몇 천개를 찔러 넣어 한장를 만드는데 열대여섯 시간을 찍어야 겨우 세장. 이것을 모아서 5일장에 내다 팔면 그래도 새파란 만원짜리 몇 장을 움켜쥐고 요놈은 제사상, 요놈은 설치리, 요놈은 세배돈으로 쪼개어서 며칠 만에 따라온 아들을 이끌어 시장옆 온통 붉은 색의 소방서 앞에 있는 조그만 중국집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도 한그릇을 사주셨다.
이제 중국산 돗자리가 들어온지도 십여년도 훌쩍 넘었고 그 노동의 댓가로 부모님의 팔과 오래도록 앉아 있어 생긴 관절염 뿐이지만 그래도 아직도 사랑방 백열등 아래서 돗자리 짜는 그 겨울의 소리와 설을 맞이하기 위한 며칠 동안의 그 아련한 풍경들이 그리워진다.
1월 31 2005
김장독 이야기
요새는 대부분이 김장을 하지않고 조금씩 사서 먹거나 김장을 한다해도 몇 포기만을 담아 정말 없어서는 안될 주식으로서가 아니라 특식의 찌게거리나 좋은 고기반찬과 기름진 음식의 느끼한 맛을 보조해주는 반찬의 양념 정도로만 먹는 것 같다.
첫서리가 내리기 전에 텃밭에 심어놓은 배추를 수확하는 것으로 겨울준비가 시작되었다. 혹시라도 일찍 서리가 내리면 맞히지 않게하기 위해 씌어 놓았던 볏집을 한꺼풀씩 걷어내고 나면 통통하게 살이 찬 실한 배추들이 볏짚에 한단한단 잘 묶여져 있다. 하루종일 배추를 뽑아 뿌리를 잘라내고 그중에서 실한 놈들을 골라 김장용으로 따로 놓고 사이좋게 한골씩 심어 놓은 무를 뽑아서 무우채를 잘라내어 가지런히 뉘어 놓고 나면 짧은 겨울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쯤에 끝이 난다.
텃밭 한켠에 깊게 파놓은 구덩이에 볏짚을 깔고 옆으로는 둘러치고 배추, 무를 사이좋게 쌓아 놓고 볏짚을 덮고 보드라운 흙으로 구덩이를 덮어 봉긋하게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한켠에 숨구멍을 뚫어 놓아 겨우내 꺼집어 내어 먹기 쉽게 해놓고 여기에 또 짚으로 구멍을 단단히 막고 나면 김장준비가 시작되었다.
새파란 배추잎을 한꺼풀씩 벗겨내어 몇 장씩 모으고 어제 잘 잘라모아둔 무청을 굴비묶음처럼 짚으로 묶고 처마밑에 걸어두어 씨레기를 만들고 어제부터 엄마의 손맛?으로 적당히 풀어 놓은 소금물에 봄날 어린 병아리색의 배추들을 4등분하여 하나씩 담가 두었다. 엄마의 손맛?과 절임의 시간이 김치맛이 되었다. 적당히 늘어진 배추에 잘 끓여서 걸러놓은 장국과 양념을 준비하여 배춧잎 한장한장 사이에 찔러넣고 잘 싸서 김장독에 한켜씩 쌓고 그 위에 겨울 동치미용으로 커다란 무를 몇개씩 올려놓고 숯을 넣어 커다란 옹기김장독에 넣어 우물가 옆에 김치독을 묻으면 김장도 끝이나고 한겨울 반찬걱정을 들게 되었다.
우리가 가을걷이를 시작할 쯤이면 옆동네 오직 한집만 사는 옹기골에선 김장독 만들 준비로 바빴다. 아버지 두분이 친구이고 아들 둘도 친구여서 집에 놀러가면 집앞에서부터 깨어진 옹기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옆에선 장작더미가 산처럼 쌓여져 있고 굴뚝에서 새하얀 연기가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아직 유약도 바르지 않은 옹기들이 그늘에 마르고 있고 한곳에선 물레에 옹기를 올려 놓고 열심히 물레질을 하면서 옹기를 만들고 있었다. 재미로 한 두개 만들어 보지만 역시 장인의 손앞에 어린아이의 옹기들은 삐뚤빼뚤 모양도 잡지 못하지만 이것 역시 재미있는 놀이였다.
직접 만든 못난이 옹기를 집어 들고 유약을 통에 풍덩 담가 돌리면서 유약을 발라 말리고 다음 옹기구울 때 귀퉁이 한곳에 넣어 구워 달라고 부탁를 하고 왔다. 엄마따라 십리를 걸어가서 잘 생긴 놈으로 김장독을 사서 골라올 때 저번의 그놈을 가져와서 내 김치통이라며 몇 포기를 따로 넣어놓고 내어 먹곤 했던 기억들이 새삼스럽다.
옹기는 물을 담아두면 조금씩 새어나오는 토기보다는 조금 낫고 화려한 빛깔을 자랑하는 도자기보다는 못한 물건이지만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었다. 굽는 온도가 높지 않아 고령토, 백토안의 금속성질을 띈 성분들이 유리질화 되지 못해 강건하지도 못하고 색깔도 우충충했다. 그러나 그 점토속의 다공질들이 외부와 통기가 되게하여 김치, 장 등 산소가 적당히 필요한 음식에는 절묘하게 쓰임새가 맞았다.
요즘은 김장을 해도 좋은 김치냉장고가 있어 옹기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있어도 겨우 간장이나 된장을 담아 두고 쓰거나 이것도 벌써 공장에서 생산된 간장, 된장이 프라스틱 통에 담겨 냉장고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튼튼하고 화려해지고 네모짜리로 규격화된 지금의 모습들보다 보관하기 힘들고 무겁고 우충충한 색깔에 멋스럽지 못한 이놈들이 앞마당 옆에 가지런히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엄마, 동생들처럼 그렇게 제자리에서 제 역할에 맞는 모습으로 서있는 것이 그립다.
By vinipapa • 엄마아빠 • 0